본문 바로가기
독서 기록

『왕의 재정』크리스천이 돈을 대하는 3가지 태도

by Lazy Quant 2020. 7. 2.
반응형

 

 돈이 필요 없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나의 학창 시절은 가난했었고, 자연스럽게 검소한 생활은 습관이 되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남들보다 만족감의 역치가 상당히 낮았다. 월세 15만원 짜리 낡은 단칸방에 살면서도, 매일 천 원짜리 김밥으로 끼니를 해결해도 만족하며 살았다. 아르바이트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며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히 돈을 바라지도, 멀리하지도 않는 태도로 살았다.

 

 그러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서 돈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나는 누추한 곳에 살아도, 저렴한 음식으로 끼니를 때워도 괜찮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좋은 집에 살게 하고 싶었고, 맛있는 음식을 먹게 하고 싶었다. 그렇게 남들과 같이 돈을 바라게 되었다.

 

 돈을 많이 벌겠다고 다짐 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돈이 하나님의 자리를 빼앗지는 않을까 염려했다. 성경에서도 돈을 부정적으로 묘사할 때가 더 많았기에 염려도 커져갔다. 그런데 내가 돈을 바라는 동기가 나쁜 것은 아니지 않는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그리고 이웃을 위해서 사용하고 싶었을 뿐이다. 크리스천은 돈을 어떻게 대해야할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왕의 재정』을 통해 얻게 되었다.

 


 

1. 재물의 노예되지 말고 재물을 노예로 다스리라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것이니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주리라  6:38

'주라!', 이것은 주님의 명령이고 우리가 순종할 일이다. '그리하면'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다. 우리가 말씀에 따라 순종하여 누구에게 준다면, 하나님은 다시 우리에게 주실 것이다. 하나님이 주실 때는 우리가 준 것에 비해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해서 우리에게 안겨주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자유를 주기도 하고, 제약을 주기도 한다. 일반적으로는 후자를 느낄 때가 많다. 하고 싶은 것들, 먹고 싶은 것들, 가지고 싶은 것들을 포기하는 대부분의 이유가 돈이다. 그래서 수많은 재테크 서적에서는 돈을 위해서 일하지 말고, 돈이 나를 위해서 일하도록 만들라고 조언한다.

 

 크리스천은 비슷해보이지만 다른 태도로 돈을 대해야 한다. 재테크 분야에서 경제적 자유는 많은 돈을 통해 이룰 수 있다. 하지만 크리스천은 많은 돈이 아닌, 넘치게 주실 하나님을 통해 경제적 자유을 이룰 수 있다. 단순히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돈을 많이 가지더라도 더 큰 돈을 벌기 위해서만 전전긍긍한다면 돈의 노예이기 때문이다.

 

 돈에 대한 탐욕은 위험하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다스려야 한다. 돈 그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닌, 그저 중립적인 도구일 뿐이다.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돈을 많이 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돈이 어디서 왔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2. 재물을 보물처럼 소유하지 않고 잘 관리하라.

 

 주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은 재물에 대해 착하고 충성된 사람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먼저 돈을 맡기시고, 그것을 어떻게 다루는가를 보시면서 것을 맡기시고 많은 권세를 주신다. (...) 돈을 다루는 것으로 '하늘의 ' 맡을 자격시험을 보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돈은 그저 도구일 뿐이기 때문에 돈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돈 그 자체에 목적을 두고, 보물처럼 쌓아둘 때 돈은 우상이 된다. 주님은 우리가 돈을 어떻게 다루는지 보시고 더 큰 것을 주실지, 다시 가져가실지 정하신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사용해야 한다. 성빈들을 위해 사용해야 하고, 이웃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돈이 많아지면' 이웃을 위해 쓰겠다고 다짐한다. 그런데 지금 내 수중에 있는 '작아보이는' 그 돈이 주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돈이다. 큰 돈을 벌 수 있을 때까지는 펑펑 쓰겠다, 큰 돈이 될 때까지 무작정 모으겠다는 태도 모두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지금부터 바로 성빈을 위해, 이웃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3. 재물을 다루면서도 장막생활을 하라.

 성빈만 선교사가 아니다. 성부도 선교사다. 성부들이 재물을 성빈들에게 주어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연합하도록 부르신 것이다. 성부들의 재정 형태는 부가 많을 있으나 삶의 형태는 성빈으로 살아야 한다. 스스로 가난하게 살기를 결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돈이 많기 때문에 맘몬의 영향을 쉽게 받는다. 맘몬은 호시탐탐 성부를 노린다. 성부 사람이 세워지면 땅에 하나님나라가 있게 확장되기 때문이다.

 성부도, 성빈도 모두 선교사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럼 나는 성부의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한다. 그런데 성부는 성빈처럼 살고, 성빈은 성부처럼 살아야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성부는 경제적 활동을 많이 하지 못하는 목회자, 선교사들을 대신해서 '부'라는 은혜를 받은 것이다.  

 

 레위 지파를 위해 자신의 기업으로부터 얻은 생산물을 나누어 준 열 한 지파처럼 검소한 장막의 생활을 유지해야 한다. 어디까지가 행복한 삶을 위한 소비이고, 어디까지가 사치인지를 규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가지게 되는 모든 재물이 나를 위해서가 아닌 성빈들과 이웃들을 위함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공감댓글, 그리고 공유는 큰 힘이 됩니다 : )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