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 평 : 사랑의 열병으로 인한 비극에 드러난 '개개인의 감성'에 대한 열망
00.
괴테의 작품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유명한 문호인 그를 모를 리는 없었다. 고전들을 골라 읽는 편은 아니었기에, 아직 읽어보지 않은 고전이 훨씬 많았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도 그런 작품 중 하나였다. 오랫동안 책장에 꽂혀있었을 뿐, 제목에서도 느껴지는 연애 소설의 느낌 때문인지 딱히 끌리지는 않았다. 그러다 다음 읽을 책을 미리 준비 해놓지 않은 터에 읽을 책을 찾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얇은 두께가 눈에 띄어 가볍게 읽어보자는 생각으로 읽기 시작했다.
"이보게, 젊은 친구! 사랑은 다분히 인간적인 것인 만큼 반드시 인간다운 방식으로 사랑해야 하네. 자네의 시간을 쪼개서 일부는 일하는 데 쓰고, 남은 시간은 여자친구를 위해 투자하는 것이 옳다고 보네. 자신의 재산 규모를 면밀히 따져보고 꼭 필요한 경비를 제외한 나머지를 애인의 선물을 쓴다면 나도 말리지 않겠네. 그러나 너무 자주는 말고 그녀의 생일이나 세례일 같은 때 하게나." 그 청년이 공직자의 충고를 받아들인다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쓸모 있는 청년이 되겠지. 나라도 영주마다 쫓아다니며 그를 직원으로 뽑아달라고 추천하고 싶을 걸세. 하지만 그의 사랑은 그걸로 끝장이네.
01.
시대가 변한 후에도 고전이 그 의미를 잃지 않는 이유는 인간이 변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때문인지 300년 전 쓰여진 소설 속 주인공 베르테르가 하는 말이 마치 지금의 나에게 주의를 주는 것 같았다. 여자친구가 나의 바쁜 삶 때문에 종종 서운해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일 때문에 바쁜 것이니 이해해 달라고, 다 우리를 위한 것이라고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를 들며 달래고는 한다. 여자친구는 머리로는 이해를 하지만, 서운한 마음은 가시지 않는다고 한다.
베르테르는 사회에 필요한 청년이 되기 위해, 개인의 감성을 억누르고 기계처럼 변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항상 내가 열심히 노력하는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들을 위해서라고 되뇌인다. 그러면서도 어느새 나도 모르게 베르테르가 경계한 그런 청년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좋은 사회 구성원이 되는 것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것, 둘 중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내 열정은 항상 광기나 진배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결코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위업에 도전하거나 불가능해 보이는 일에 매달리는 특출한 인간들은 옛날부터 술주정뱅이나 광인으로 매도되어왔음을 잘 알고 있으니까요.
02.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연애 소설의 형식을 빌리고 있지만, 그 속에서 획일화된 집단에 대해 비판을 가하고 있다. 조직과 사회는 안정된 상태에서의 변화를 두려워 한다. 그래서 구성원의 튀는 행동을 위험으로 인지한다. 그런 사람들을 특이하고 이상한 사람이라고 매도하며 예측 가능한, 통제 가능한 형태로 남아있기를 강권한다.
IT 업계에서는 누구나 'Make the world a better place'라는 슬로건을 외친다. 나 또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는' 데에 동참하기 위해서 IT 업계에 발을 들였다.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은 세상이 만들어놓은 틀에 갇힌 사람들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틀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의 방향과 방식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세상이 '또라이'라고 손가락질 하더라도 이를 즐길 수 있는 마인드로 무장하기를.
인간은 어쩔 수 없는 인간입니다. 열정이 불타오르고 인간성의 한계를 경험하는 순간에 한 줌의 이성은 거의, 아니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겁니다.
03.
베르테르가 좇고있는 개개인의 감성에 많은 부분 동의한다. 하지만 그 정도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베르테르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극에 달할 때 결혼이라는 사회적 제도가 가두어둔 이성이라는 경계도 소용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개인의 열정을 마음껏 불태울 수 있는 경계는 타인의 감성에 피해를 주기 전까지이다. 감성의 불길이 이성을 삼켜버리기 전, 이성은 그 감성의 불길이 타인의 감성을 향하고 있지는 않은지 잘 점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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