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과학도서 분야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책이다. 아마 내가 태어났을 때도 1위였고, 지금도 1위일 것이다. 혹자는 1981년, 36년 전에 발표된 책이기에, 그 이후에 연구된 많은 내용을 반영하지 못하고 잘못된 내용도 있다고 말을 한다. 그러나 『코스모스』는 그 내용이 담고 있는 사실적 진위 여부가 아닌, '우주'라는 신비로운 것들로 가득한 주제에 대한 칼 세이건의 통찰과 스토리텔링에 그 의미를 두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700페이지가 넘는 분량과 우주라는 어려운 주제 때문에 펼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겠지만, 한 번 이 책을 펼치게 된다면 단순 과학적 지식 나열이 아닌, 저자가 우리에게 알리고 있는 흥미로운 주제들과, 던지고 있는 많은 메시지들에 금방 빠져들 것이다.
비록 오감으로 인지 가능한 세계에 전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라도,
우리에게는 그런 것을 상상할 수 있는 자유가 반드시 있다.
-요하네스 케플러
01.
평생을 지구에서 살아온 우리는 지구에서 느껴왔던 오감으로 우주를 생각하려고 한다. 그러나 우주는 우리의 오감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놀라운 공간이다. 길이, 너비, 높이로 구성된 3차원의 세상에서 살아온 우리는, 4차원의 공간을 상상하는 것 조차 어렵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납작이나라(flat world)에 대한 글을 읽어보면, 우리가 인지조차 하지 못하는 4차원의 공간이 존재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차원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우주 안에서의 온도, 크기, 거리 등은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어마어마한 수치이기 때문에 상상으로도 가늠하기가 어렵다. 또한 강력한 중력으로 빛까지 모두 끌어들여 오직 암흑만 남게 된 '블랙홀', 빛의 속도로 움직일 때 발생하는 '시간 지연' 현상 등 우주는 온갖 신비로운 현상들로 가득하기에 '우주'는 지금까지의 고정관념을 버리고 바라봐야할 존재인 것 같다.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02.
세상의 기원에 대해 두 가지 입장이 있다.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입장과, 빅뱅과 같은 사건으로 자연 '발생'했다는 입장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주장은 '과학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은 '빅뱅 이론'이 진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태초에 큰 폭발로 인해 이 세상이 생겨났다.'는 빅뱅 이론의 결과적인 내용만을 알고, 그 빅뱅 이론의 근거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기독교 신자로서 항상 세상의 기원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살아왔다. '과학적'인 빅뱅 이론은 왜 여전히 '과학적이지 못한' 창조론을 압도하지 못할까?
빅뱅 이론은 '도플러 효과'를 통해 추론해낸 이론이고, 다른 과학적인 뒷받침으로 부족한 부분을 메우고 있다. 그러나 '대폭발의 순간은 어떤 상태였는가? 대폭발 이전의 상황은? 그 당시 우주의 크기는? 어떻게 물질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있던 우주에서 갑자기 물질이 생겨났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은 여전히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라는 것이다. 우리는 과학이 절대적 진리라고 배우지만, 우리가 절대적 진리라고 생각했던 이론들이 새로운 과학 이론에 의해 뒤집히는 경우도 있다. 과학 또한 '믿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과율이 초래한 진화의 결과는 얽히고설켜 있다.
우리가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수준으로 복잡하기 때문에
인간은 자연 앞에 스스로를 낮추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03.
우연히도 『코스모스』를 읽고 있는 시기에,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함께 읽고 있었다. 『사피엔스』에서는 지구에서 이미 신과 같은 존재가 된 인간을 조명하고 있었고, 아이러니하게도 『코스모스』에서는 지구와 인간은 우주 전체에서 티끌과도 같은 존재로 묘사되고 있었다. 우주에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 인류가 지구에서 폭압적인 신으로 군림하고 있다. 그 수많은 인가들 중 '나'라는 개인 또한 마치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야하는 것처럼 이기적으로 살아갈 때가 많다. 마치 과거의 인류들이 지구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착각했던 것처럼 말이다.
내가 세상의 중심이 아닐 뿐더러, 세상의 중심이 되어야 할 이유도 없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겸손의 첫걸음이 아닐까 생각된다. 겸손이란,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그럴 수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 짜증을 낼 필요도, 분노할 필요도 없다. 겸손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바람직한 태도이다.
과학적인 태도로 살아가는 것은 중요하다. 과학은 '자기 검증을 생명으로 하고, 자유로운 탐구 정신에서 자생적으로 성장했으며 자유로운 탐구가 곧 과학의 목적'이다. 그러나 요즘 세상에서 과학이 '팩트'라는 이름으로 다른 의견을 묵살하고 억압하는 데에 사용되는 것을 종종 발견한다. 과학 그 자체가 절대적으로 진리라고 확신하는 것부터가 과학적이지 못한 것이다.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이 모순되고, 틀릴 수 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진리를 끝까지 탐구하겠다는 용기가 진짜 과학적인 태도이다. 과학적인 태도로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