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예수인가?
한 줄 평 : 초신자와 반(半) 신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기독교의 열 두가지 주제
00.
신앙 생활을 시작한 지 벌써 20년 가까이 되어간다. 교회에서 리더로 섬기고 있고, 매년 선교도 참가한다. 겉보기에는 나의 신앙이 꽤나 성숙해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종교 활동을 열심히 한다고 해서 진짜 크리스천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 스스로도 여전히 세상과 교회에 한 발씩 걸친 이중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삶을 원치 않는다는 사실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마음 한 켠에는 '어떻게 20년 동안 교회에 몸 담고 있었는데, 아직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가'하는 답답함이 있다.
사람들은 세상을 더 '잘' 살아가기 위해 종교를 찾는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더 '잘' 산다의 기준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기준과 다르다. 세상 사람들은 더 많이 가지기 위해, 더 높아지기 위해 종교에 의지한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는 종교 그 이상이다. 기독교에서 '잘' 사는 것은 오직 '예수'를 의미한다. 『왜 예수인가?』는 왜 오직 예수일 수 밖에 없는지 알기 쉽게 설명한다.
예수님은 따르는 자에게 물질을 주겠다, 명예를 주겠다 약속하시지 않았습니다. 다만 나를 주겠다, 나를 마시고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살과 피는 생명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겠다고 하신 것은 생명입니다.
01.
처음 교회를 다니게 되었을 때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더 큰 명예를 얻기 위해 나간 것이 아니었다. 그 때는 세상적인 것들에 대한 욕심이 없을 때였다. 그 때는 그저 신이라는 존재가 이유없이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감격스러웠다. 그러다 커가면서 입시, 취직 등 바라는 것들이 점점 많아졌고, 이를 하나님께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하나님은 달라는 기도에 주로 주심으로 답하셨다.
내가 신앙 생활을 열심히 했기 때문에 원하는 것들을 주신 것은 아닐 것이다. 필요하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에 입시와 취업 등의 문제에서 좋은 결과를 허락하셨을 것이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세상적 축복에 익숙해진 나는 더 많은 돈과, 더 큰 명예를 요구하게 되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나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신 것은 돈과 명예가 아니다. 어느 순간 예수님이 주신 생명의 감사함은 잊고, 바라는 것을 주시지 않으면 원망하는 내가 되어 있었다.
우리의 상급은 나 자신이 얻는 유익이 아니라 나로 인해 주님께로 돌이키는 영혼들입니다. 크리스천의 상급은 언제나 사람입니다. 크리스천의 보상은 언제나 잃었던 영혼이 돌아오는 것입니다.
02.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다고 해서 인생을 나태하고 게으르게 살아간 것은 아니었다. 그 누구보다 치열하고 열심히 살아갔다. 그랬기 때문에 그 결과들을 내 힘으로 해낸 것이라는 착각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내 노력이 해냈다라는 교만함이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감사함을 앞지르기도 했다. 그리고 앞으로 더 큰 보상도 받을만하다고 자만했다.
보상을 원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가, 욕심인가 헷갈리기도 했다. 열심히 노력한 것은 사실이니 그만한 보상을 기대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라고 합리화했다. 그러나 이제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내가 기대할 것은 오로지 돌아올 한 영혼뿐이다. 그 외의 것을 내가 기대하며 일한다면, 그것은 나의 욕심이다.
지금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이 부활과 영원한 생명과 관련되도록 하라는 의미입니다. 그것이 우리 삶의 목적이 되도록 하라는 뜻입니다. 어떻게 내가 하는 이 일이 영원한 삶과 접속되게 할 것인가, 어떻게 내 일상이 영원한 삶과 관련되게 할 것인가, 이것이 우리 인생의 초점이 되어야 합니다.
03.
지금 내가 목회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에서 하나님이 맡기신 의미를 찾기란 어렵다고 생각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IT의 길로 들어섰지만, 회사에서 주어진 일을 하루하루 해내고 나면 내가 생각했던 일들을 할 시간은 부족했다. 그래서 더 큰 영향력을 지녀야한다고 생각했다. 더 많은 돈을 벌어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높은 자리에 올라가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생각했다.
더 많이 가지는 것과 더 높이 올라가는 것의 '동기'가 바로 서 있다면, 세상 사람들의 세속적인 바람과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러한 방식은 예수님이 택하신 방식이 아니다. 하나님은 내가 더 많이 가지고 베풀기를, 더 높아져서 은혜를 내려보내기를 원하시지 않는다. 지금 당장 가진 것을 베풀고, 지금 당장 낮은 곳으로 가 섬기기를 바라신다. 이제 더 이상 합리화를 할 수 없을만큼 명확히 깨달았으니,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우직하게 걸어나가기를 소망한다.